한창 독서에 빠져서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읽어대던 중학생 시절에 '7막 7장'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사연이 재밌다.
어느날 학교에서, 내 근처에 앉는 친구가 수업시간에 책을 읽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친구는 우등생인데다 수업 시간에 공부에만 집중하는 녀석인데 계속 이 책을 붙들고 앉아 있길래,
도대체 무슨 책인지 궁금해서 쉬는시간에 제목을 보니 '7막 7장'이라는 연극 관련 서적 같았다.
왠 연극이냐며 잠깐 좀 보자는 말에 그 녀석은 보물 단지처럼 책을 껴안으며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계속 졸라도 안 보여주길래 어이가 없어서, 그날 서점에서 직접 구입해서 읽었는데..
그때서야 녀석이 왜 빌려주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너무 좋은 책이기에 얄팍한 이기심으로 자기만 읽을려고 한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친구에게 감사한다. 그 녀석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접할 수 없었을 테니까.
책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홍정욱이라는 인물의 자서전이다.
중학교 3학년때, 케네디를 좋아하게 되어서 그의 모교인 미국 쵸우트 로즈마리 홀 고교를 시작으로 하버드대학, 서울대,
북경대학원, 스탠포드 로스쿨을 거쳐 현재의 위치인 코리아헤럴드 CEO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안에서의 방황, 사랑, 인생에 대해 진솔하게 서술되어 있다.
나는 그 때 난생 처음으로 책을 읽으며 가슴이 쿵쾅거리는 두근거림과 혼이 빠져나갈 정도의 동경감을 느꼈고,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나의 꿈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유학을 가기 위해서 혼자 유학원을 돌아다니며 향후 10년 계획까지 세웠던것에도
이 책의 영향이 적지 않음을 부정 할 수 없다.
(이 스토리는 나중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마침 IMF사태가 일어나는 바람에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다.)
이렇게 나를 포함한 105만 독자의 가슴을 열정으로 채우고 학력지상주의와 변질된 조기유학 돌풍을 일으킨다는 우려에
출간 4년만에 스스로 절판시킨 책이6년 후, '그리고 그 후'라는 부제를 달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개정판에는 하버드를 졸업한 후의 여정이 4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추가되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가 많다.
그 안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이전의 치열한 삶의 일기가 아니라 그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했고,
지금은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하여 무엇을 하고 있다… 라는 짤막한 이야기 뿐인데다
그저 그런 ‘혜택 받은’ 엘리트의 반열에 스스로 귀속 되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케네디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케네디가 다녔던 쵸우트 고등학교를 선택하고 하버드를 가게 되었다면
케네디 같은 미국 대통령이 되어보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헤럴드 사는 그가 아니라도 여전히 수많은 외국계 회사들 중의 하나인 튼튼한 헤럴드 사일 것인데,
끝없는 도전과 진실을 말하던그가 왜 그 회사를 인수하였으며.. 왜 하필이면, 전 고위장관의 딸에게 한눈에 반하여 결혼하였는지
- 정말 뒷배경은 전혀 고려치않았는지..-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평범한 개인이 아니라, 10년 전 좁다란 대한민국에서 불현듯 등장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영혼에 꿈과 열정을 심어준 경이로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더이상 7막 7장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지만 저자 자신의 말처럼 남들보다 일찍 검증의 삶으로 들어선 만큼
아직까지는 비판을 위한 비판 보다는 충분한 검증을 받을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것이 좋을거라고 생각한다.
* 인상적인 구절
기숙사는 밤 10시 30분이면 완전히 소등을 했다.
나는 기숙사 사감의 순시가 시작되는 11시까지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다가 순시가 끝나면 일어나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장소인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서 밤 1시까지 공부를 계속했다.
때로는 꼬박 밤을 새우면서 새벽 3~4시가 될 때까지 화장실을 지키곤 했는데, 그러다가 4시에 청소부가 들어오면
할 수 없이 옆의 샤워실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샤워를 하면서 책을 들고 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그때는 공부한 것을 머릿속에 하나씩 떠올리며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화장실에서 밤새 공부하는 것은 여름보다 겨울이 더 괴로웠다.
아무리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히터가 후끈후끈 들어오면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참다 못해 문을 열어놓으면 그때는 찬바람이 와락 밀려들어왔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를 하룻밤 새 몇 번씩 반복하며
나는 한 평도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영어와 고독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 p. 59
꿈은 생명보다 소중하다.
생명을 잃음은 육체의 죽음이지만 꿈을 잃음은 내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삶은 꿈의 아름다움을 믿고 내일을 향해 질주하는 자의 것이다. --- p.253
위대한 삶을 누리라고 한다. 꿈과 함께 깨어있고, 꿈과 함께 고뇌하며, 꿈과 함께 전진한 이들이 있다.
기여하고픈 꿈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다.
진보하는 세상이며 중흥하는 세상이다.
일생을 바쳐 추구할 의미요, 가치가 아닐 수 없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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