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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주절주절

글렌 굴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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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타인웨이를 보면 글렌 굴드가 생각납니다.

자그마한 나무 의자를 보아도 그가 생각납니다.

지휘자 애드리안 볼트의 연주를 들어도 그가 생각닙니다.

캐나다를 보면 그가 생각납니다.

로잘린 투렉의 연주를 들어도 그가 생각납니다.

몇년 전 그의 연주를 소재로 써 놓은 꽁트 하나를 옮겨봅니다.

처음으로 써 본 꽁트였고 다시는 꽁트를 써보지 않았습니다.


2

- 글렌 굴드 이야기

302호 강의실 뒷문을 나와 동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복도의 오른쪽에는

조그만 미닫이문이 하나 있었다. 그 낡은 문은 놀랍게도 소강당의 뒷문이었는데,

사용하지 않아 보이는 그 문은 잠겨 있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누구나 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난 그 문을 통해 매주 한 번 정도 소강당을 들락거렸다.

왜냐면 그 소강당에는 스타인웨이 하나가 왼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강당에서 행해지는 교양 수업이 없는 금요일 오후면

슬그머니 그 텅 빈 소강당으로 들어가 그 그랜드 피아노를 마구 두들기고

또 쌓인 먼지를 닦아주기도 했었다.

주로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을 마치 글렌 굴드처럼 쳐댔었는데,

방해하는 이가 없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 단 한 번의 예외는 있었다. 그 예외는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늦은 금요일 오후 독문과 졸업반 남학생이 내가 짝사랑 했던 영문과 신입생 여자애의 가슴을

움켜쥐면서, 입을 맞춘 채 소강당의 문을 밀치면서 뛰어든 것이었다. -

어쨌든 난 곧 그 피아노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무척이나 흥미로운

금요일 오후를 보내왔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피아노가 보이질 않게 되었다.

그 피아노가 어딘가로 옮겨져 버린 것이었다. 옮겨져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폐기 처분할 만한 피아노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무슨 행사에 쓰려고 가져간 것일까?

그럼 곧 가져다 놓겠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한달 내내 그 피아노는 보이질 않았다.

따라서 그 한 달의 금요일 오후는 할 일 없이 자취방에 틀어박혀 담배를 피며 멍하니 앉았거나

굴드가 치는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들을 들으며 보내게 되었다.

- 내게는 진정한 스타인웨이는 굴드가 연주하는 피아노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므로 어찌됐든 난 금요일에 스타인웨이를 계속 즐기게 되기도 한 것이었다.

하지만 본래의 그 스타인웨이가 그리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더구나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까지 들끓는 학생으로 붐비던 신학기의 조교실은

왠지 금요일 오후 혼자 있기가 내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즐거운 것은 분명 아니었고,

난 그저 그 서향의 좁은 방에선 무언가 불안해했었다.

또 다른 스타인웨이 - 이 또 다른 스타인웨이는 무지 훌륭한 음색의 것으로,

나는 백건우가 이 학교에서 공연했을 때 이 피아노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는

대강당에 있었는데, 그곳은 교회대용의 천장 높은 아주 널찍한 곳으로,

난 그런 곳을 내켜하지 않을뿐더러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이 분교 본관의 한가운데가

나는 싫었다. 아! 나의 피아노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그 피아노 앞에서 내가 그리 즐거웠던 것은 그 피아노가 내 삶을 갖가지 표현하기에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친 듯이 두들기고, 흐느끼듯 흘러내리는

내 두 손과 그 손들을 제어하는 내 이성으로 난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내 삶을 표현하려고 시도 했었고 적어도 난 그것이 성공했다고 믿고 싶었다.

나, 나의 손, 피아노 건반, 피아노 줄, 소리, 그리고 소강당의 공간.

아! 그런데 내 세계에서 나와 세계의 매개가 사라진 것이다.

-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술적 표현방식만이 지니는 실존적 진리를

난 믿고 싶었다. 나의 연주와 소강당의 음향은, 설사 그 음향이 방해 받더라도

그 배후에 나의 연주와의 필연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피아니스트였다면 내 연주의 녹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표현되는 이러한 방식은 상상으로 그칠지라도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몰랐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금요일 어느 날 난 드디어 결심했다.

토요일 학교에 가서 본관에 들러 피아노의 행방을 물어 보고 추적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무심코 302호 강의실을 돌아서 가던 나는, 피아노가 있던 소강당의

그 자리에 머리가 벗겨진 한 노인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 놀랐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그는 너무나도 늙어버려 겨우 얼굴을 알아 볼 만한 글렌 굴드였다.


 .

 .

 .

바흐를 연주하면,

하이든을 연주하면,

모짜르트를 연주하면,

베토벤을 연주하면,

쇤베르그를 연주하면,

바흐,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쇤베르그가 아닌 굴드의 바흐가 되는,

굴드의 하이든이 되는, 굴드의 모짜르트가 되는, 굴드의 베토벤이 되는,

굴드의 쇤베르그가 되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연주자.

그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 또 하나 - 짙은 프록 코트와 펠트 모자, 목도리와 장갑...



J.S. Bach - Inventio No.2, BWV 773

- Glenn G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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