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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주절주절

사람이 바이크 보다 위험해

첫번째 사고는 정확히 10년 전인 1998년의 10월에 일어났다. 당시 나는 대림 마그마를 타고 다녔는데,

스로틀이건 브레이크건 뭐든 '풀'이 기본이던 때다.

신촌에서 홍대방향으로 달리던 나는 동교동 로터리에서 풀 뱅크로 스텝을 긁으며 좌회전 코너를 돌았다.

부웅~! 기분 좋은 무중력이 몸을 감싼다. 뒷바퀴부터 부드럽게 노면에 착지하면, 지나가는 버스의 승객들이

나를 커다란 눈으로 놀랍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라이딩이 너무 멋져서는 아니고, 빠져버린 핸들을

어찌할지가 궁금해서였다.

핸들이 빠졌다. 클러치도, 스로틀도, 브레이크도 저 아래 앞바퀴 부근에서 아스팔트에 갈리고 있었다.

잡을 게 없는 나는 그냥 연료 탱크에 손을 대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아아!  망연자실한 채로 청기와 주유소까지 가서는

속도가 40km/h정도로 떨어지자 그냥 뛰어내렸다.

신기하게도 아무데도 다치지 않았지만 바이크는 박살이 났다. 같이 달리던 친구 녀석은 "지금 뭐한 거야?" 이랬다.

그 다음해.  애마인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뒤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사이드 미러를

슬쩍 들여다보았더니 바로 뒤에 차가 한대 붙어있다.

아뿔싸~. 누가 날 들이받을려고 하는 줄 알았다. 뒤 차 운전자를 살펴보니 빠글빠글 파마를 한 아줌마다.

그녀는 뭔가에 무척 기분이 상한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게다가 화가 난 대상은 나인 것 같았다.

그녀는 하이 빔을 켜대고 짜증나는 소리의 혼을 길게 울렸댔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손짓을로 저리 비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도대체 뭘 잘못한 건지 몰랐지만, 우선 피하기로 했다.

스로틀을 열어 슬쩍 거리를 벌리면서 옆에 있는 차선으로 옮겼다. 좀 더 속력을 내어 내 앞에 있던 차를 추월한 후

그 앞으로 끼어들었다.

이제 화를 내는 아줌마는 내 뒤차의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위험은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줌마의 분노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줌마가 운전하는 흰색 아토스는 순식간에 내 뒤 차를 추월하더니, 내 모터사이클을 사정없이 들이박았다.

옆으로 튕겨나간 나는 마침 옆에 서 있던 버스에 부딪힌덕분에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서 있을수 있었다.

아토스의 차체가 내 왼쪽 발을 쳤기 때문에 무릎아래가 얼얼했는데, 발가락은 아무래도 부러진것 같았다.

그녀는 다음 신호등에서 태연하게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멀쩡하게 길 가는 사람을 들이 받고 도망가느냐고 따지자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을 했다.

"내 앞에 알짱거리고 서 있었잖아요"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꾸미면서 들어보니, 그녀는 모터사이클이 도로를 달리면 안 되는 줄 알고 있었다..

TV에서 폭주족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폭주족 들이받은 게 무슨 잘못이냐는 거다. 그녀는 일부러 들이박았다고

진술했는데, 대한민국 역사 이래 초유의 사건이어서 담당 경찰도 어찌해야 할바를 몰라 했다.

그녀가 다니는 담담 교회의 목사가 와서 내 발목을 붙잡고 빌었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녀도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기 때문에 나는 합의 조건으로 그녀의 차를 당장 팔 것, 그리고 정신 감정을 받을 것을 요구했으며,

다시 차를 몰지 않겠다는 각서도 함께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 10월에는 8차선을 가로질러 불법 U턴을 하려던 택시와 부딪혀 결국 처음으로 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했다.
 
무지하게 아팠고, 완전히 낫는 데에 거의 2년이 걸렸으며 나는 여전히 휴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뛰지는 못하고,

걷기도 부자연스럽고 예전처럼 바이크를 탈 수도 없다.

그 때 그 사거리에 가지 않았더라면, 속도를 좀더 줄여서 그 차가 U턴한 다음에 지나갔더라면 하고 수천 번은

생각해봤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고 당시 다리가 부러진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던 택시 기사는 경찰에서는 내가 와서 들이 받았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내가 병원비와 위자료 보상을 받은 것은 사고로부터 4년이 지난 후였다.


다리 골절이 좀 나아져서 다시 라이더 전선에 복귀하던 때도 얄궂게 10월이었다. 1박2일의 강원도 투어를 마치고

좌, 우회전 차선이 별도로 마련된 총 4차선 도로에서 직진용2차선에 서 있던 아줌마가 파란색 직진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우회전(!)을 하는 바람에 20여 미터를 튕겨 나가야 했다.

기구한 운명의 내 애마는 주인의 라이더 복귀와 동시에 폐차 해야했고, 200만원짜리 슈트와 50만원짜리 헬멧은

너덜너덜해졌다.

그녀는 땅바닥에 나 뒹굴어 정신이 혼미해진 내가 다가와 자기 차의 사이드미러에 난 상처를 어쩔 거냐며 버럭 화를 냈다.
 
경찰과 구급 요원, 목격자 여섯 명이 달라붙었는데도 그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약 세 시간이 걸렸다.

내 사고의 기록을 보면 일목요연하듯, 바이크의 문제로 사고가 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이 사람의 잘못이라는 말이다. 위험한 건 바이크가 아니라

사람이다.  나, 당신, 그리고 당신의 친구와 가족이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운전하려고

끓임없이 노력하지 않는 한 위험은 없어지지 않는다. 노력이나 하고 나서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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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은 모 바이크 잡지에 실린 글을 직접 타이핑 한 것이다.

바이크 이야기인것 같지만...결국은 사람 이야기이다

도구 자체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지만 그걸 다루는 사람이 위험하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 예로 바이크를 말한것 뿐이지 다른것도 마찬이다.

카메라를 예로 들자면 내공이 상당하신 분들이나 여러기종 사용해보신분들은 어느 하나 가지고 이건 못쓸 카메라라고 말하시지 않는다.

조금 더 좋은것과 덜 좋은것 뿐인데 잘 알지도 못하고 장비에만 빠져서, 자기가 쓰고 있는 메이져회사들의 장비만 최고인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 헛소리를 한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이러한 일은 흔하게 널려있다.

삼탁스 유저들은 삼성카메라를 쓴다고 깔보는 시선을 느껴본적이 있을 것이다.

바이크를 탄다고 이유없이 그런 시선을 받는 일은 허다하다...

솔직히 이런 고정관념을 바꾸기는 쉽지 않고, 앞으로 다들 노력해야 나아질 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겉보기에 폼나고 비싸 보이고 크고 좋아 보이는 것만이 인정 받는 곳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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